“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놀랍습니다. 기가 막히지요. 지금이 적기에요. 중국에서는 바야흐로 변화가 시작됐는데 자본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거든요. 게다가 거긴 인도와 달라요. 인도는 소수 세도 가문이 지배하고 있죠. 그들은 파벌을 이루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이미 돈이 있어요. 일본이나 한국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왜 포커테이블에서 자리를 내주겠습니까? 우리 돈을 따먹으려는 게 아니라면 말예요. 그러나 중국은 다릅니다. 거기에는 외부 사람이 끼어들 틈이 있어요. 중국경제는 계획경제 노선에 따라 성장했어요. 그래서 인도처럼 세도 가문이 주도하지 않고 정부관리가 조종하지요. 내 생각에는 이들 관리가 경제를 발전시킬 자본을 얻을 기회를 만난다면 그 기회를 꽉 움켜쥘 것 같아요.” (1장 15쪽)


우리가 본 공장 대부분은 무척 컸다. 공장시설이라기보다는 마을에 가까웠다. 높은 담 안에는 놀랍게도 수천 명이 살고 있었고 자체 병원과 유치원, 극장, 가게도 있었다. 공장의 규모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공장의 위치였다. 공장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구석진 곳에 있었다. 그곳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아주 궁벽한 곳으로 높디높은 산길을 올라야 갈 수 있었다. 계곡 꼭대기에 있는 공장에 가기 위해 오후 내내 가파른 협곡 사이로 흙먼지 길을 오른 적도 몇 번 있었다. 공장은 붉은 연기를 뿜어내고 거품이 부글부글 이는 더러운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3500명이 거주하는 톈싱(天興)의 한 공장은 너무 좁은 계곡에 있어 햇빛이 직접 비치는 시간이 하루에 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처 씨의 말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에 이르자 마오는 사태가 악화돼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시나 해안에 있는 군수공장을 모두 산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그 뒤 몇 년에 걸쳐 수많은 공장이 폭격기의 눈에 띄지 않는 가파른 산골짝으로 재배치됐다.
베이징에서 온 관리 중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예, 그때는 그게 당연하게 여겨졌죠. 기반시설이 워낙 취약했으니까요. 해방이 된 뒤 우리는 모두 일심일체가 되어 새로운 나라 건설에 대한 열의에 불타고 있었죠. 그래서 공장이 모두 산으로 옮겨간 겁니다. 우리는 모두 기꺼이 나라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태려했죠. 그러나 지금은 천육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산골짝에 갇혀 있는데 도무지 대책이 없어요."
“천육백만이요! 정말입니까?"
“예. 하지만 지금은 정부에서 우리를 돌려보내고 싶어 하지요." 처가 말했다.
“돌려보낸다고요? 왜죠?"
“그게, 아시다시피, 전쟁위험은 이제 모두 지난 얘기가 됐거든요. 중앙정부는 요즘 군사보다 건설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사시설을 민간설비로’라는 새로운 정책을 들고 나왔죠. 정부는 우리가 다른 제품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모터사이클, 트랙터, 자동차 부품 같은 거요. 이제 정부는 그처럼 많은 군수공장을 지원할 여력이 없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같아요. 어느 운동이나 구호는 무성하지만 돈은 태부족이라는 거죠." (4장 58-62쪽)


8500만 달러. 많은 돈인 것 같았다. 아니, 맙소사, 엄청난 돈이었다! 특히 중국 같은 곳에서 그것은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당시에는 중국 내에서 그런 규모의 자본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미국의 돈이 지닌 위력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날마다 수백만 달러의 투자이행약속이 이루어진다. 그것도 고작 몇 사람이 두 시간 정도 회의를 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거시적 분석을 토대로 말이다. 투자대상은 당시 어떤 것이 인기인가에 따라 변한다. 1990년대 말에는 그것이 닷컴기업이었고, 그 다음에는 중국이었다. (5장 90쪽)


그 뒤 몇 달간 공장상황이 더욱 어려워지자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현금이 늘 부족해 많은 업체들이 제품을 직접 맞바꾸어 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고객에서 공급업체로 옮겨갔고 나라 전체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번졌다. 이 때문에 곧 전체 산업이 유동성 부족 사태에 부닥쳤고 ‘삼각 채무’의 덫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어느 단계에 이르니 이 문제는 경제 전체를 위협하게 됐고 중앙정부는 어쩔 수 없이 개입해 막대한 현금을 쏟아 부어야 했다. (……)
많은 사업체, 특히 중국 북동부에 있는 사업체들이 거의 뇌사상태에 빠졌다. 현금은 말라붙었는데 앞날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좀비처럼 멍하니 그저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공급업체들은 부품이 아닌 돈으로 물건값을 받으리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고 원재료를 계속 보냈다. 공장은 공장대로 거래처에 트럭 말고는 달리 받을 것이 없음을 알면서 제품을 실어 보냈다. 직원들도 현금으로 임금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계속해서 제품을 만들었다. 하얼빈의 어느 공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샴푸로 월급을 준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공장의 공장장은 거래처에 넘긴 제품 대금으로 비누와 샴푸를 받기로 했고 그것을 직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직원들은 비누와 샴푸를 시장에 팔아 돈을 마련했다. (6장 125-126쪽)


우 여사가 우리를 이처럼 함부로 대하는 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던 것은 우의 성격이 난폭한 면 때문이기도 하지만 합작기업이 설립된 방식에도 원인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베이징 제1경공업국과 접촉하지 않고 베이징 시 정부와 접촉했다. 그리고 칼라 힐스의 영향력을 이용해 계약승인을 받아냈다. 정상절차가 완전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제1경공업국이 합작사업 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관련부처의 승인이 끝난 뒤였다. 경공업국은 우리 계약 건을 까맣게 몰랐다는 데 몹시 화가 났고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을 내심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칼라가 장관들을 구슬린 덕분에 일이 쉽게 끝났지만 이번 일은 중국에서 관시(關係), 즉 ‘특별 커넥션’을 함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해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다. (9장 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