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home > 도서 목록(제품상세보기)

6월 항쟁과 87년 체제의 성립
지은이 : 이윤섭
정가 : 16000원
페이지수 : 384쪽
ISBN 978-89-97751-94-5
출판일 : 2017-11-10
목록

이 책은

   

1987년 6월 항쟁의 배경 및 경위와 그에 이은 87년 체제의 성립 과정을 돌아본 책이다. 1980년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전 국민적 저항과 항쟁이 어떻게 진행됐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87년 체제로 귀결됐는지를 설명해준다.

 

 

 

소개글 

 

‘87년 체제’는 1987년의 전 국민적 6월 민주화 항쟁과 이에 밀린 당시 집권여당 대표 노태우의 ‘629 선언’에 따른 9차 개헌으로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체제를 말한다. 좁게는 선거제도상 대통령 직선제와 정부형태상 대통령 중심제를 골간으로 한 87년 이후 정치체제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권위주의 정치체제 종식과 형식적 민주절차 제도화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다변화까지 포괄하는 87년 이후 국가사회체제 전반을 가리킨다. 지은이는 좁은 의미의 87년 체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 이후에 87년 체제를 돌아보는 일은 그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까지 당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가장 밑바탕에서는 87년 체제의 시대적 한계가 작용했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87년 체제가 막강한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한 반면에 그런 대통령의 권력을 원천적으로 견제하는 장치는 제대로 두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다양화한 사회에 걸맞은 권력분산과 상호견제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이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려면 헌법 차원의 국가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것이 2017년부터 새로운 차원에서 본격화한 개헌 논의다. 그런데 개헌 논의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당리당략과 기득권의 경연장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다분히 내장하고 있다. 이런 위험성에 함몰되지 않고 이번 개헌 논의를 절차로 보나 결과로 보나 국가의 백년대계에 부합하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온 국민의 각성과 관심이 요구된다.

 
이 책을 읽는 것을 통해 87년 체제의 역사적 배경과 성립 과정을 되짚어보는 것은 지금의 시대적 과제를 올바로 파악하고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서도 6월 항쟁과 87년 체제의 성립 과정에 관한 서술이나 논평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사실 확인이나 정보 입수를 넘어 그 역사적 맥락과 전후 인과관계까지 알기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은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주관적인 의견을 가급적 배제하고 입증이 가능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87년 체제 성립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지은이

 

이윤섭_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국제관계사 속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작업을 해왔다. 저서로 《다시 읽는 삼국사》, 《역동적 고려사》, 《세계 속 한국 근대사》, 《객관적 20세기 전반기사》, 《박정희 정권의 역사》, 《여말선초》, 《왕망-명분과 속임수 사이》, 《일본 100년》, 《커피, 설탕, 차의 세계사》 등이 있고, 번역서로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세계는 평평하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 등이 있다.

 

   

 

차례

 

서문

프롤로그

 
1부 개헌운동과 전두환의 역공
김대중의 재미 정치활동
김영삼의 단식투쟁
학생운동의 활성화와 신민당의 부상
학원안정법 파동
민추위 사건
개헌운동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전두환의 계엄령 준비 지시
김대중의 대통령 불출마 선언
불출마 선언에 대한 각계의 반응

 
2부 1987년 6월 민주항쟁
미국의 한국 정계 개편 전략
박종철 고문살해 사건
전두환의 개헌 거부 선언
고문 은폐조작 진상 폭로
6월 민주항쟁
전두환의 병력동원 시도
미국의 개입
6·29 선언
13대 대선·총선과 지역분할 고착
전두환의 백담사 유배극

 

에필로그: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책속에서

 

1985년 가을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민추위 사건’이 벌어졌다. 이 조작 사건의 여파로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고문이 한국사회에서 공론화되었다. 고문은 국민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켜 순종하게 하고 허위자백을 받아 반정부인사를 처벌하는 데 활용되는 등 권력을 유지하는 데 요긴한 방편이었다. 전두환 집권 시절에는 모든 시국사건에서 고문이 활용되었는데, 사법부가 이를 용인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109쪽)
 
 
1984년 가을부터 계속 학생 운동권, 재야 단체, 야당에 밀리던 전두환은 1986년 여름부터 비상조치를 포함한 대규모 탄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9월 6일 전두환은 청와대 공보수석 이종률(李鍾律)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이 수석, 우리나라의 정치상황, 안보상황, 사회상황을 살펴볼 때 정치안정이 가장 필요한 일인데 무언가 특별조치가 필요한 것 같소. 야당이 여당의 개헌안에 동의하지 않고 당리당략에 따라 학생을 선동하여 사회혼란을 조성할 때 대통령 비상조치권을 발동 안 할 수 없어요. ……" (165쪽)
 
 
1987년 1월 12일 전두환은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여야 합의에 의한 개헌이 실패할 경우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전두환은 ‘여야 합의 개헌’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실제로는 실권 없는 후계자를 내세워 퇴임 후에도 권력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연두 기자회견은 그런 그의 본심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입장을 좀 더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었다. (240쪽)
 
 
6월 5일 국민운동본부는 ‘6·10 국민대회에 즈음하여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 이번 국민대회에의 동참을 통하여 진실의 힘을, 국가의 도덕성을, 국민 주권의 최고 절대성을 거짓 정권과 부도덕한 정부와 교만한 통치권자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함께 확인할 것을 호소합니다.” (279쪽)
 
 
19일 아침 주한미군의 정보부대는 한국군에 동원령이 내려졌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한국군으로부터 위수령이 발동된다는 통보는 받지 못했다. 주한미군 정보부대는 이날 오후에 릴리 대사가 전두환을 만나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기로 돼 있다는 것을 알고, 릴리 대사에게 군 동원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CIA 한국지부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전두환은 6월 20일 새벽 4시를 기해 위수령을 선포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육군 작전참모에게 작전 명령이 하달된 사실이 확인됐다. (312쪽)
 

 

6·29 선언은 전두환의 과감한 위기돌파 전략이요 고도의 정치술책이었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됨으로써 6·29 선언은 성공하였다. 이것은 학생운동권을 포함한 범야권 세력이 그들 자신의 역량과 전두환의 역량을 오산한 데 따른 결과였다. 야권은 선거가 실시될 때 가장 중요한 능력, 즉 단일 후보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350쪽)

  

 

민주화를 바라던 사람들에게 1987년 대통령 선거 결과는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유권자의 투표가 아닌 총칼에 의해 성립된 정권이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반민주적이고 정통성 없는 정권에 대한 저항과 타도 운동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많은 사람의 죽음과 피땀 어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전두환이 지정한 후계자 노태우에게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정통성을 주는 것으로 귀결된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분노는 엄청났다. (363쪽)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