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개진하려고 하는 비판의 요점은 이 책의 제목에 이미 함축돼 있으며, 우리가 케인즈주의의 시기까지 경제학이 갖고 있었다고 한 속성 중 첫 번째, 즉 ‘현실’과 이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가시적이고 연속적인 관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대 경제학은 바로 이런 연관성 문제에 대해 놀랍도록 무관심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현대의 ‘고급 이론화 작업(high theorizing)’은 그 정점에 이르면 오직 중세의 스콜라주의에만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비현실적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이 책의 두 번째 목적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그런 비현실적인 태도를 변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13쪽)


분석상의 정교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는 데 많은 경제학자들이 주목했다. 이미 1975년에 미국경제학회 회장으로서 한 연설에서 로버트 고든은 ‘분석상의 엄밀함’을 ‘현실과의 관련성’보다 앞세우는 데 따르는 위험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 초기의 경고는 주목받지 못했다. (…) 미국 최고 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위의 사실을 확증시켜주는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압도적인 비율로 학생들은 이 ‘새’ 경제학의 기술적 도전을 환영했다. 68%의 학생들이 경제 자체에 대한 완벽한 지식은 경제학계에서 성공을 획득하는 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믿고 있었다. 오직 3%만이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고 대답했다. 따라서 지난 20여 년 동안의 노력이 경제학 비전의 강력한 새 중심을 확립하는 데 실패한 이유를 찾고 있는 우리는 비주류적 접근방식이 비전상의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 이외에 이런 기술의 유혹을 이 이유로서 추가하고자 한다. (149~150쪽)


경제학은 특별히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되는 사회적 탐구의 한 형태다. 최근 경제학의 주된 발전 속에 비전의 위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헤어날 수 없는 연결관계를 탐구하기는커녕 그것을 인정조차 하지 못하는 데 있다. (…) 다음 사항도 급히 부연하자. 즉 경제학의 어휘와 분석도구가 하나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의 위치나 그 발전속도의 변화, 혹은 실업의 광경은 마르크스주의적 처방에 따라 제작된 렌즈를 통해 볼 때와 새고전파 경제학자의 주문에 따라 제작된 렌즈를 통해 볼 때에 서로 매우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건 경제학 없이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할 방도가 전혀 없다. 심리학과 사회학, 그리고 정치학은 그 개념상, 분석상의 관심 대상에 실업이나 불균등 성장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곧 경제학 없이는 파악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측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돌려 말하면, 경제학은 자본주의를 말하지 않고는 배울 수도 활용할 수도 없다. (160~164쪽)


경제사상에서 창조적 합의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근본적인 틀은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이전 두 시기에는 없었지만 우리 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관심영역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공공부문의 개입이 자본주의의 작동에 더 넓고 더 깊게 침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최고 먼 미래에는, 첫 번째 시기의 계급 동학이나 두 번째 시기의 경쟁적인 경제주체 세계의 문제는 현실과 연관된 경제적 사고의 틀을 짜는 데 필요한 비전과 분석을 발생시킬 배경 가정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배경 가정으로 적절한 것은 오히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사이의 균형관계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가정, 즉 공공부문의 역할이 이전보다 훨씬 더 상승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가정이어야 할 것이다. 주장의 요지를 좀더 정치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려움과 위험으로부터 자본주의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개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본질적인 배경 가정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공공부문이 존재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라는 문제가 바로 현재의 비전이 봉착한 위기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문제다. (173~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