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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지은이 :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 옮긴이 : 차기태
정가 : 13000원
페이지수 : 296쪽
ISBN 978-89-91071-88-9
출판일 : 201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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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겹친 16세기 초에 유럽의 대표적인 인문주의 사상가 에라스무스가 당시 사회와 교회의 위선과 폐습을 풍자하고 인생살이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관점과 태도의 쇄신을 촉구한 책이다. 옮긴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책의 라틴어 원전을 직접 번역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주석을 풍부하게 달았다.

 

 

소개글 

 

에라스무스는 이 책을 1509년에 라틴어로 써서 1511년에 출판했다. 따라서 이 책은 올해(2011년)로 처음 출판된 지 500주년을 맞은 셈이다. 옮긴이는 이 책의 라틴어 원전을 직접 한글로 번역해보기로 하고 작업을 하던 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위대한 고전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더욱 더 번역에 성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번역서는 ‘500주년 기념’과 ‘국내 최초의 라틴어 원전 직접번역’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됐다.

이 책의 표제는 일제시대 이후로 《우신예찬(愚神禮讚)》으로 번역됐다. 그러나 이것은 에라스무스가 붙인 원래의 제목(그리스어의 라틴어 표기로는 ‘Moriae Encomium’, 라틴어로는 ‘Stultitiae Laus’)과 뜻이 일치하지 않는데다가 한글 전용이 정착된 요즘의 독자들에게 얼른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 번역서의 표제를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으로 붙였다.

500년 전에 에라스무스가 이 책을 집필한 배경에 대해 옮긴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에라스무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상황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교황청을 비롯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책에 묘사되어 있듯이 어떤 형태로든지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될 상태였다. 위로는 위선과 교만, 쾌락 등 온갖 악덕이 난무하고 있었고, 그 결과로 일반 신도와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다. 봉건영주의 착취와 가렴주구에 성직자들의 위선까지 더해졌으니 일반 신도와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러니 그들이 기댈 언덕이라고는 미신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독선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관용의 정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툭하면 종교재판이요 여차하면 화형으로 이단자를 단죄했다. 게다가 국가간 전쟁도 끊임없이 일어나 일반 민중의 생활터전을 황폐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니 에라스무스처럼 인간과 신에게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심적 고통과 비애를 느꼈을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씌어졌기에 이 책은 당대의 종교개혁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권위주의와 허례허식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이 책은 ‘바보 여신’이 자기 자신, 바보인 인간, 인간의 어리석음을 예찬하는 형식의 풍자적인 글로 씌어졌기에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오늘날에도 일반 독자가 읽기에 흥미롭다.

게다가 이 책은 기독교 교회에 관련된 문제 외에 인간사회와 인생살이에 관련된 문제도 다루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 책을 독자에 대한 지은이 에라스무스의 ‘인생 컨설팅’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휴머니즘, 자유정신, 중용과 관용의 태도, 세계시민주의를 중시한 에라스무스는 이 책에서도 바로 그러한 자신의 가치관, 인간관, 세계관에 입각해 인생살이와 삶의 태도에 대해 풍자도 하고 농담도 하고 조언도 하며, 그 과정에서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깨우침을 준다.

에라스무스가 이 책의 곳곳에서 인용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이나 고사도 알고 보면 재미도 있고 교훈도 주지만,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오늘날 한국의 독자에게는 이 책을 읽는 데 장해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옮긴이는 모두 300여 개의 주석을 달아 독자가 그것만 참고해도 막힘없이 이 책의 본문을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책에는 독일의 화가 한스 홀바인이 라틴어 원전에 그려 넣었던 수십 개의 삽화와 그가 그린 에라스무스의 초상화도 실었다. 홀바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1497~1543): 알브레히트 뒤러, 피터르 브뤼헐 등과 함께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독일의 화가다. 초상화를 많이 그렸고, 그 외에 종교화, 풍자화 등도 그렸다. 10~20대에는 주로 스위스 바젤에서 거주하며 그림공부와 작품활동을 했고, 이때 종교개혁 운동을 돕기 위한 그림도 그렸다. 이 책에 실린 삽화는 그가 18세였던 1515년에 그린 것으로, 당시 그가 갖고 있었던 재치와 풍자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에라스무스의 초상화는 그가 1523년에 그린 것이다. 그는 1526년에 에라스무스의 추천서를 들고 영국으로 건너가 토머스 모어를 비롯한 영국의 인문주의자들과 교분을 맺었고, 영국에서 초상화를 잘 그리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어 1535년에 영국 왕 헨리 8세의 지명을 받아 궁정화가가 되기도 했다.

 

지은이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Desiderius Erasmus, 1466~1536)_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전반에 걸쳐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삶을 산 사상가, 신학자, 고전학자, 휴머니스트다. 1466년경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범유럽적 지식인으로 활동했고, 20대에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신부가 되지 않고 교회 밖에서 독립적인 학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씌어진 고전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1500년에 《에라스무스 격언집》을 써서 펴냈고, 이 저서로 큰 명성을 얻었다. 1509년경부터는 영국에서 토머스 모어의 집에 머무르면서 이 책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을 집필했다. 이 책은 1511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516년에는 라틴어판과 그리스어판 《신약성서》를 집필해 출판했다. 이 밖에도 《기독교 병사의 필독서》(1503), 《기독교 군주의 교육》(1516년), 《진정한 신학의 방법》(1518), 《자유의지론》(1524), 《아동교육론》(1529), 《사도신경에 대한 설명》(1533) 등 많은 책을 써서 출판했다. 그는 저술활동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규명하고 기존 교회조직의 격식과 위선을 비판했지만,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촉발시킨 본격적인 종교개혁 운동에 대해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과 종교적 관용을 주장하면서 중립의 입장을 지켰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 진영과 가톨릭 진영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다. 에라스무스가 1536년에 질병으로 사망한 지 23년 뒤인 1559년에 그의 저서들이 가톨릭교회의 금서목록에 올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져가는 듯했지만 계몽주의 운동이 시작된 17세기부터 그의 사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그 뒤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와 그의 저서들은 휴머니즘, 세계시민주의, 범유럽주의의 상징이 돼왔다.

 

 

옮긴이 

 

차기태_ 1958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삼미종합특수강과 삼미정공에서 6년 2개월 근무하고,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될 때 공채 1기 기자로 들어갔다. <한겨레신문>에서는 사회부, 체육부, 편집부, 문화부, 경제부, 한겨레21부 등 각부를 두루 거쳤지만, 절반가량은 경제부에서 일했다. 2004년 말 <한겨레신문>을 퇴직한 후 인터넷신문을 거쳐 2011년 현재 한경닷컴에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고전, 내 마음의 엘리시움》(2007년, 필맥)과 《여신과의 대화, 세계 금융위기와 그 후》(2009년, 필맥)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한눈에 보는 지구촌 경제》(1994년, 백산서당)가 있다.

 

 

 

 

 

차례

 

토머스 모어에게 보내는 편지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옮긴이의 후기

참고문헌

 


 

책속에서

 

여자가 남자의 호의를 얻게 해주는 것이 결국 어리석음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남자가 여자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그 대신 남자가 얻는 것이라고는 쾌락뿐이죠. 그런데 여자가 무엇을 가지고 남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지를 보면 모두 다름 아닌 어리석음에 의해서 생겨난 거예요. 남자가 여자와 쾌락을 즐길 때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을 여자와 주고받고,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를 잘 헤아려보세요. 그러면 내 말이 진실임을 부인하지 못할 거예요. (56~57쪽)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그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과 불화를 겪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화합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만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어요? 이 바보 여신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거예요. (66쪽)


반면에 진정한 사려분별이란 이런 거예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혜는 추구하지 않고, 웬만한 세상일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으로 눈감아주거나 함께 오류에 빠져보기도 하는 거죠. 일부 사람들은 이런 태도야말로 어리석음의 증거라고 힐난할 거예요. 나도 그런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연극을 잘 해내는 길임을 그들이 인정하기면 하면 돼요. (87~88쪽)


속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속지 않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객관적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행복은 의견에 달려 있어요. 왜냐하면 인간사는 너무나 다양하고 애매해서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143쪽)


위대한 솔로몬 왕도 어리석은 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그는 《잠언》 30장에 이렇게 썼죠. “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이방인들의 교사였던 사도 바울은 고린토인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어요. 그는 “나는 바보로서 말합니다. 나는 더 바보입니다”라고 했어요. 마치 어리석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덜하면 불명예나 되는 듯이 말이에요. (242쪽)


더욱이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사람을 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에 그처럼 어리석은 동물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 같은 표현에도 ‘양 같은 성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양의 우둔함에 빗대는 표현이고,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조롱하는 용어로 사용되죠. 그리스도는 자신을 그런 양들의 목자라고 선언했고, 자신도 어린 양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서 기쁨을 느꼈습니다. (258쪽)


영적인 것은 육신의 것보다 우월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닙니다. 예언자도 분명히 이렇게 약속했어요.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했노라.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둔 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았노라.” 그것은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음은 삶의 변용에 의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해집니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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